01/05/10 스코페 택시 운전수의 비열한 사기와 케밥같지 않은 케밥


아침에 일어나니 스코페는 릴라수도원처럼 눈이 엄청 오고 있었다.
1층 부엌에 놓여 있는 잼, 식빵, 우유, 삶은계란 주스등을 대충 접시에 담아 아침을 먹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오더니 오늘 별 다른 계획 없으면 근처의 호수를 다녀오라고 그곳이 멋 있다고 했다. 내일 호수옆 리조트 동네인 Ohrid를 갈 거라고 그래도 다녀올만 하냐 했더니 그곳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며 강추하셨다.
택시비로 왕복 2만원 정도 나오는데 어제 밤 늦게 도착한 미국애들 두명에게도 가보라고 강추하셔서 우리나 걔네나 꼭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눠 내면 택시비가 나쁘지 않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아저씨가 불러준 택시에 올랐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나 이런 투어나 액티비티를 파는게 더 주업무인 양 노골적으로 미는 곳이 있지만 택시회사에서 나중에 따로 돈을 받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곳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이 가기로 한 미국애들은 남녀로 커플인줄 알았는데 커플은 아니고 그냥 같이 여행하는 사이라고 했다. 캔사스에서 왔다니 내가 촌넘들이라고 놀렸다. 아직 많이 어려 보이는게 대학교 freshman정도나 되었을까 싶었다.
아침을 다 먹고 택시가 도착해 타고 가는데 스코페 외곽에 있는 MMMM호수까지는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주인아저씨한테 얘기를 듣고 출발을 했다. 그런데 운전수가 자꾸 앞에 앉은 미국 남자애한테 말을 건내더니 눈이 위험하니 타이어 공기좀 빼고 간다며 주유소를 들렀다. 스코페 택시는 기다리는 동안 미터기가 올라가는 시스템이라 요금은 계속 올라가고 그래봤자 3,4분이었지만 살짝 경각심이 들었다.


부실해 보이지만 빠진것 없이 다양한 셀프아침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스코페


그리고 다시 출발해 가는데 미국애가 다시 그쪽 호수가면 atm이 있냐는 말에 atm에 볼일이 있냐며 지금 들를 수 있다고 갑자기 차를 꺽어 골목으로 들어가 이 건물에 atm이 있다며 어리버리한 미국애들 둘을 데리고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이집트와 그리스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것들이 저런 얄팍한 짓거리에 따라간 것에 화가 났지만 그래봤자 atm 돈찾는게 5분씩 걸리겠냐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5분은 커녕 10분이 지나서야 나오는데 우선은 꾹 참고 다시 차가 출발해서야 내가 얘기를 꺼냈다. 운전수한테 우린 왕복 2만원 정도 듣고 왔고 그 이상은 한푼도 못 준다고 못을 박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이 택시는 정식 택시니 미터가 오르는 그대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 왜 니 멋대로 주유소 들르고 은행 갔냐고 내가 성질이 나는대로 소리를 마구 질렀더니. 적반하장으로 은행은 너네가 가자 그런거 아니냐며 경철서로 가자는 둥 헛소리를 했다.
그제서야 미국애들도 정신을 차렸는지 그돈으로 못 갈거면 당장 차를 세우라고 했지만 택시운전수는 슬쩍 여기서는 못 세운다며 조금 더 가 결국 1만원 정도를 채우고서야 세웠다. 마음같아서야 우리가 더 경찰서로 가고 싶었지만 외국에선 가봤자 우리만 피곤하고 우리편이라는 보장도 없어 그냥 거기서 내렸다. 우리는 4천원 정도의 잔돈을 이것밖에 없다며 진작에 세우라고 했는데 안 세웠으니 너의 잘못이라며 내렸지만 어리버리한 미국넘이 지랄하는 그놈한테 나머지 돈을 다 주고 내려 또 한번 내 속을 긁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 네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휘날리는 눈보라 뿐이었고 마땅한 택시나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아 우선 근처 주유소에 길을 물어보니 호수까지는 아직도 10분 이상 더 가야했기에 사실 그 누구도 열정적으로 나선 관광이 아니길래 우린 모두 아무 미련없이 시내 방향 버스를 기다려 타고 스코페 시내로 돌아왔다.



히터 한방울 나오지 않는 깡통 버스를 타고 돌아와 그 바보같은 미국애들과 헤어져 시장쪽으로 갔다.
시장이라고 한 곳은 시내 중심에서 스톤브릿지를 건너가면 fortress가 하나 나오고 그 옆이었는데 원래는 fortress를 보러 갔지만 눈밭을 헤매고 다녔더니 나의 헤질대로 헤진 신발은 폭삭 젖어 더이상 눈을 밟고 올라가기도 싫고 특별한것도 없어 보이길래 옆에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는 이것저것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창가로 맛있어 보이는 소세지 같은 것을 굽고 있는 손님이 많아 보이는 한 식당을 들어갔는데 메뉴는 케밥이라고 쓰여진 메뉴 한 가지였다. 하지만 나온 음식은 터키나 중동의 케밥과는 다른, 역시나 아까 본 소세지 같은 고기를 시킨 갯수만큼 쌓여 나왔고.
거기에 양념소금 같은 것을 찍어 빵에 싸서 생양파,고추 피클과 함께 먹는데 정말 너무나 맛 있었다. 가격도 20개에 만원정도 하니 너무 싸고 맛있었다. 우리가 만약 다시 스코페에 온다면 바로 이 소세지 때문일것이라며 의외의 횡재에 열광하며 시내로 돌아와 눈이 너무 많이 들어와 더이상 신기 힘든 나의 운동화를 대체할 것을 찾아봤다.


마케도니아식 케밥. 케밥이라는 게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은 의미가 있는듯 하다. 암튼 케밥 중에 제일 맛 있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 스포츠 브랜드들은 다 들어와 있지만 가격은 상당히 셌다. 유럽 정가를 다 받으려 하는건지 비싸서 살까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세일하는 폭이 제일 큰 놈으로 잡아들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에 와서 쉬고 있노라니 주인 아저씨가 나타나 호수는 어땟냐고 묻길래 그 사건을 얘기해 줬더니 얼굴이 굳어지면서 자기네가 매번 거래하는 택시회사인데 지금까지는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다며 당장 전화를 해서 따진다고 했다. 사실 커미션으로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정말 그곳이 가장 좋아서 애용하는지는 우린 절대 알수 없는 일이다.

저녁에는 러시아식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하는 전통 행사가 있다길래 우리도 쭐래쭐래 구경을 갔는데 모닥불 같은 것을 태우며 동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과 움식을 함께 하는 꽤 큰 동네잔치같은 분위기였다. 그곳에 모인 2-30명 정도의 동네 주민들은 이방인인 우리를 너무나 따뜻하게 맞이해주었고. 어디서 왔냐 스코페는 어떠냐 하는 통상적인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얘기가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로 빠지더니 결국 눈물을 글썽이며 자기네 나라의 슬픈 현실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구 유고에서 갈라져 나온 마케도니아는 자신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그 마케도니아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강한데 그리스에서는 절대 인정을 못 하며 스코피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외에도 사실 세계에 알려진게 별로 없는 작은 신생 국가로써 나름 서글픈게 많은 것 같았다.
아침에 만난 택시 기사같은 쓰레기들은 어느 나라나 있는 것이고, 그외 만난 이나라 사람들은 세계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따뜻하고 밝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인것 같다. 같은 동구권이면서도 이렇게 이곳만 성향이 다르다니 세상은 정말 신기함의 연속이다. 


주인 아저씨의 추천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게 된 마케도니아식 피자가 유명한 레스토랑. 피자와는 사뭇 다른 음식이지만 매우 맛 있다

전혀 우리가 알고 있던 유럽같지 않았던 동네 행사. 케밥과 사람들때문이라도 마케도니아는 다시 갈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