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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4시반 리오 데 자네이로를 출발한 버스는 저녁에 밥 먹으러 휴게소 들른 시간과 상파울루 들른 시간을 빼고는 밤을 새워 계속 달렸다. 화장실도 버스 1층에 들어있으니 일체 쉬지 않고 운전수는 애초에 두명이 탑승하여 교대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내리 달리다보면 지루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너무나 안락한 의자와 계속 틀어주는 영화 덕분에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느끼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다양하게 틀어준다기에는 승객중 애들도 있는데 주로 공포물이나 액션물이 많았고, 최고는 Joyride라는 차를 얻어 타면 토막되어 나가는 Saw같은 영화류였다. 이틀째 날이 밝고는 아침을 먹으러 잠깐 들리고 또 달려 점심시간이 되서 또 내렸다. 남미의 버스는 밥부터 간식까지 잘 챙겨준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었는데 우리가 장거리 버스를 탔던 브라질 구간에서는 전혀 버스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없었다. (나중에 다른 나라들은 주로 줬으니 브라질은 휴게소 활성화 정책인가 보다)
점심을 먹고 조금 더 가니 드디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이 나왔고 우린 브라질 입국하던 날부터 여권사이에 껴서 들고 다니던 노란색 종이로 된 임시 거주증을 반납하고 출국도장을 받았다. 내 손으로 쓴 종이에 도장 하나 찍어준건데 이걸 잃어버리면 재발급 비용이 상당히 비싸니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닌데 홀가분해졌다. 우리 버스는 국경을 조금 지나 낯익은 Puerto Iguazu의 버스 터미널에 들러 사람들 절반이 내리고 다시 올라탔다. 결국 주요 노선은 브라질에서 여기까지인 모양인데 우리가 가는 포사다스까지는 아직도 4-5시간을 더 가야했다. 어느새 버스 탄지 24시간이 지나고, 도착지는 나올 생각이 없고, 버스는 예정 도착 시간인 6시반을 넘어가고도 계속 황무지같은 컴컴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밤에 새로운 도시에 내려 다시 대중교통으로 숙소를 찾아가는것은 남미에서는 매우 꺼려지는 일이었지만 이미 어두워진 상황, 이틀을 예약해 둔 호스텔을 어떻게 찾아가나 고민을 하던 찰나, 갑자기 '꽝!'하는 대포 소리 같은게 들리더니 버스가 갑자기 포장되어 있던 도로를 탈선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떨어지는 느낌도 들며 쿵쾅거리는 소음과 함께 내 몸은 붕 떠 날라가고 있었고 이렇게 죽나보다라는 생각까지 만감이 교차했다. 분명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겐 평생처럼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을 그렇게 달리다가 어느 순간 버스는 멈춰섰고 내 몸은 좌석에서 3칸 정도 앞으로 날라가 있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신경쓸 겨를도 없이 불이 모두 꺼진 암흑속에서 우선 달룡이를 찾았고 내가 복도쪽에 앉고 달룡이는 창쪽이라 좌석 발받침에 끼어있었다. 어쨋건 둘다 살아는 있으니 크게 한숨을 돌렸지만 아직 많이 놀란 상태라 다친곳이 있는지는 파악이 안된 상태였다. 이내 버스내부의 조명이 다시 켜졌고 버스에서 모두 내리란 말을 했는지 움직일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 짐을 주섬주섬 챙겨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신발부터 찾아 신고 짐을 찾는데, 위 선반에 올려뒀던 노트북이 들어있던 배낭과 카메라를 1층 내려가는 층계에서 찾을수 있었다. 난 안경도 날라가서 아수라장이 된 버스 안에서 기적적으로 다행히 찾아내 버스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수 있는 상황은 버스가 도로를 벗어나서 3-400 미터 정도 들판을 달려 나무를 들이받고 멈췄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달룡이나 나나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이긴 한데 아직 어둠속이라 잘 파악은 안되고 있었지만 곧 경찰차가 오는게 조금 안심은 되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몰라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디 다행히 우리 뒤에 앉아 있던 아저씨 한명이 영어를 조금 했다. 아저씨는 곧 앰뷸런스가 올 것이니 그걸 타고 우선 병원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10분 정도 지나 앰뷸런스들이 오기 시작했고 아저씨는 우리보다 먼저 한 대를 타고 가고 우린 마치 오래된 포니 웨건 같은 차에 십자가만 그려놓은 듯한 앰뷸런스를 다른 두사람과 타고 갔다. 아직도 덜덜 거리는 심장에 차를 탄다는 자체도 싫었는데 공기도 안 통하고 앰뷸런스 안에는 마땅히 잡을 곳도 없고 엉덩이 붙이고 앉을 곳도 마땅치 않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일반 차량 타고 가는게 훨씬 안전하고 편할것 같지만 뭐 우리 선택이 아니니.. 앰뷸런스는 10분 정도 달려 시골 보건소 같은 낡은 병원에 우릴 내려줬다.
아저씨는 다른 병원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같이 온 사람 중 칠레에서 온 아줌마 한명이 영어를 할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우리를 한 병실로 안내했고 아픈 곳은 있는지 한번 물어보더디 그걸로 끝이었다. 우린 기다리다 우선 이곳이 어딘지를 물어보니 San Ignacio라는 동네였다. 생 이그나시오면 포사다스에서 60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유적지가 있다고 들은 동네였는데 결국 다 와서 사고가 난 것이었다. 우린 병원에 오자마자 우선 오늘은 호스텔에 못 갈듯 하니 전화를 빌려 호스텔에 전화를 해서 이렇게 사고가 나서 아무래도 취소해야 할것 같다고 하니, 괜찮다며 다 해결되고 오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이 병원은 다행히 임시로 있는 곳이었고 우릴 데리러 다른 차가 온다는데 그 차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다. 저녁 7시쯤 사고가 나고 병원에 온 게 8시쯤? 밥도 못 먹고 병실에 앉아 밤 12시가 되어서야 차가 왔는데 그 차라는게 우리가 사고가 났던 그 똑같은 기종의 버스였다. 최신식 앰뷸런스까지 바라는건 아니지만 어떻게 우리눈에 지옥같을 저 같은 버스가 우리를 데리러 올 수가 있는지 화도 나고 어이가 없는 건 당연하고 절대 저 버스 안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 있던 우리버스 환자들은 하나둘씩 올라타고 우린 당연히 선택이 없으니 올라타 좌석에 벨트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앉았다.
저녁밥은 구경도 못했고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각.. 이제라도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가나보다 했다. 하지만 버스는 우릴 모두 태우고 동네길을 5분 정도 달리더니 내리라고 한다, 그곳은 경찰서 앞이었다. 황당하게도 버스에 탔던 사람들 모두에게 이제와서 야밤에 조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우린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지금 장난하냐고 뭔 사고 일처리가 이딴식이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조서가 필요하면 지금까지 5시간을 방치해 두는 동안 병원으로 찾아와 받았으면 되는거고 우선은 병원가서 정밀조사가 먼저인게 당연한것 아닌가. 게다가 우린 스패니쉬 한마디 못하는데 뭔 내용인지도 모르는 글을 싸인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가 난리를 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우린 조서 쓰는 것에서는 빠졌지만 남들 하나씩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 한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이번에는 길게 가는게 포사다스로 가는것 같이 고속도로 (라고해봤자 우리가 사고났던 2차선도로)로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린다는 게 너무나 무서웠지만 난 피곤함이 먼저였는지 안전벨트 꽉 쥐고 이내 곯아 떨어졌다. 이젠 제대로 된 병원으로 가겠지...
버스는 어느새 어딘가 도착을 했고 병원이겠거니 하던 나의 생각은 또 보기좋게 빗나가 이번에는 버스터미널이었다. 우리가 탔던 같은 회사의 버스만 쭉 서 있는 게 공식 터미널은 아니고 이 회사 본부인 듯 했다. 왜 여기로 온 건지 어리둥절 하면서도 남들을 따라 버스를 내리니 그곳에는 아까 사고현장에서 헤어졌던 아저씨를 포함한 다른 그룹이 이미 와 있었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쪽 역시 제대로 된 치료는 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우릴 생 이그나시오에서 태워온 버스 운전수는 우리에게 포사다스까지 오기로 된 일정이었던 우리 짐을 주며 여기가 포사다스니 가라고 한다. 새벽 3시에 가라고 하는 것도 웃긴일이고 똑바로 된 피해 보상도 없고 검진도 없는데 어딜 가란 말인가? 가뜩이나 고혈압인 난 앞이 하나도 안 보이게 될 정도로 흥분하여 완전 난리를 쳤다. 그때까진 꽤나 순순히(힘없이) 행동하던 버스를 같이 타고 온 나머지 사람들도 이제서야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난 아저씨와 병원에서부터 우리 통역도 해주고 대화도 나누던 칠레 아줌마의 힘을 빌어 의사를 피력했고 우린 이대론 못 간다고 짐을 들고 버스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그후에 현지인들이 난리를 치며 높은 사람과 얘기를 했는지 그제서야 밥을 준다며 버스에 다들 타게 했고 10여분 기다리자 버스내 기내식 같은 밥을 내줬다, 그러고는 이제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그때가 벌써 새벽 5시였다.
대학병원같이 큰 병원은 아니었지만 특히 아까 그곳에 비하면 매우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4층짜리 병원에 도착한 후 한명씩 검진을 받는데 x레이 찍는게 고작이었다. 이젠 어차피 이곳에 그 어떤 기대도 없었고 우린 달룡이가 얼굴을 긁힌 것 말고는 아프거나 다친게 보이는 것은 없었으므로 그냥 순응했다. 사진 촬영후 의사와의 개인 면담을 통해 정말 많이 다친 사람들.. (그렇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한 사람들까지 우리와 이때까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만 의사가 입원을 시키는지 다른 쪽으로 빠지고 우리가 보기에 외관으로 멀쩡한 사람들은 모두 진통제 몇알 주고 끝이었다, 우리 역시 진통제만 받았다.
병원에서도 우리 통역을 해주던 칠레 아줌마는 자기네 나라면 이렇게 안 할거라며 아르헨티나는 매우 무능하다고 욕을 하는데 사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칠레인들 같은 남미인데 어디 다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료 후 진이 다 빠진 우리를 다시 태우고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서 그곳에 붙은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먹여 먹고 있더니 한 담당자인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린 한마디로 알아들을수 없는 스패니쉬로 10여분간 오간 내용을 사람들은 꽤나 만족스러워 하는것 같았다. 담당자는 영어를 전혀 못해 브라질 아저씨에게 통역을 부탁하니 버스 회사가 알아서 나중에 아프거나 문제가 있는것은 다 해결해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따로 증서가 있는것도 아니고 특히나 집도 없는 우린 그딴 말 한마디 듣고 이대로는 갈 수가 없었다. 사실 크게 다친것도 아니지만 어제 밤부터 뺑뺑이 돌린게 괴씸해서라도 난 이대로는 못 물러서겠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회담에 꾀나 만족해하며 밥먹고 그 끔찍한 버스를 다시 타고 몇십시간을 달려 본래 목적지였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간다는 거다.
회사의 일처리도 어이없지만 지옥같을 그 버스를 다시 올라다고 15시간-20시간은 남았을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간다니 그 사람들도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만약 내가 목적지가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적어도 버스는 못 탈것 같은데 황당했다, 게다가 서약서 한장 없이 단지 그 담당자라는 말만 믿고 이걸로 끝이라니.. 암튼 우리 둘을 빼놓고는 모두 버스를 타고 떠났고 남겨진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우선 회사 담당자를 찾아 실질적인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섰다. 건물을 빙빙 돌아 봤지만 보이지 않아 표 파는 부스에 가서 그사람을 어딨는지 아냐고 스페니쉬로 띠엄띠엄 말하는데 놀랍게도 부스에서 표파는 사람이 영어를 꽤 할수 있어 자연스럽게 통역을 해줬고 우린 아까 사고에서 카메라가 망가졌다고 했다. 사실 카메라 렌즈는 모로코에서 고장나 자동 포커스가 드르르 떨리며 안되는 것 이었는데 다른 것을 딱히 보상해 주지도 않을 것 같으니 이것으로 보상을 받아야했다. 그랬더니 말을 장황하게 해 도저히 이해가 안되 아까 표파는 부스로 가서 통역을 부탁했다. 그 결과 고장난 카메라 기종과 가격, 포사다스에서 있는 곳과 연락처를 적어 달라고 했다. 그걸 받고는 우리에게 호스텔 가 있으면 자기네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오늘안에 만약 연락없으면 내일 다시 온다고 경고를 하고 우린 비로소 호스텔로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아까같은 불확실한 말투가 뭔가 구체적으로 알아봐줄 것 같은 기대감과 설마 우리가 난리치는걸 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호스텔까지 택시까지 계산해주고 태워주는게 왠지 성의를 보여주는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택시를 타고 떠나려 하는데 사고를 냈던 운전수과 그의 아내인듯한 사람이 보였다. 두부부는 우리를 보고는 매우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보여줬다. 사실 사고야 언제나 날수 있는것인데 30시간 가까이 되는 운전을 두명이서 교대로만 하고 간다는 것은 너무 안전불감증이 아닐까 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우리와 사고난 차량은 3명이 타고 있던 승용차인데 그자리에서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호스텔은 터미널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다운타운 근처의 주택가에 있었다. 호스텔 주인은 어제부터의 우리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듣고는 꽤나 놀라면서도 사실 그 회사가 사고가 좀 잦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도 큰 회사니 보상은 해줄거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찰나 버스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호스텔 주인의 통역으로 진행된 협상의 골자는 호스텔 이틀 숙박 비용+카메라 수리비용으로 약 50만원이었다. 생각보다 신속하고 이 곳 상황을 볼 때 적지 않은 비용인듯 했다. 우리가 좋다고 하니 그럼 택시비용은 지금 터미널로 오면 택시 비용도 지불하겠다고 했다. 쏜살같이 다시 도착한 터미널에서는 이미 우리를 마중나와 택시비도 지불을 하고 담당자의 사무실인 듯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통역은 표 파느라 바빴지만 담당자는 우리에게 장황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 느낌은 사고는 사고이고 미안하다 뭐 대충 그런 듯한 느낌이었는데 어쨋건 아르헨티나 페소로 우리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는 한 종이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이것 역시 스패니쉬로 적혀 있었지만 대충 감으로 보상을 다 받았으며 앞으로 일체 법적인 책임도 없다 뭐 그럴것 같았다. 우리야 뭐 어차피 다시 이쪽으로 올 일도 없으니 행여나 몸이 상한데 있으면 이쪽에 말하느니 여행자보험으로 처리할 심산이라 크게 개의치 않고 사인을 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다음 여정으로 가는 버스 할인이나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데 영어를 할수 있던 티켓 부스로 데리고 가서는 여기서 다음 일정인 코르도바까지, 그리고 다시 코르도바에서 칠레 산티아고 가는 버스를 할인해줄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코르도바까지는 공짜로 해주고 코르도바에서 칠레 산티아고까지는 반값으로 해줬다. 두 구간 역시 상당히 장거리라 비쌌는데 우린 모두 합쳐 총 8-9만원 돈인 250페소에 티켓을 구매 할 수 있었다. 결국 이번 사고로 우리가 받은 보상비는 호스텔+렌즈+티켓 해서 약7-80만원 정도를 받은 셈이었다. 한국같은 나라에서의 보상비로는 턱도 없이 작은 금액일 수도 있지만 말도 안 통하는 이 오지에서 받아낸거라 매우 기뻤다. 과연 아침에 버스를 타고 떠난 사람들 중에는 한푼이라도 받아낼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린 그제서야 모든게 정리되었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갈 수 있었다. 리오데자네이로를 떠나 참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못하고 호스텔에서 푹 쉬며 제발 몸이 나중에 쑤시는 곳이 없기를 기도했다.
나무를 들이받고 멈춘 우리 버스
2층 앞 유리는 모두 깨졌다. 전망이 좋아 맨앞에 타고 싶었는데 우린 중간이라 다행이었다.
1층 내려가는 층계까지는 흙이 차올라 밀고 올라온 상황
그래도 큰 차라 외관이 많이 상하지도 않았고 박았을때의 충격도 별로 없었는데 상대방 승용차는 3명 모두 즉사했다고 한다.
병원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해본것은 컴퓨터 작동확인. 2004년도에 산 놈인데 1층층계까지 굴렀는데 멀쩡하다 -_-b
시골 보건소 수준의 병원에 5시간 방치중
전쟁같은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모든것을 끝내고 호스텔 Vuela e Pez 도착
핑크색으로 칠한 외관이 나름 레트로하면서 운치가 있다
왼쪽 얼굴을 꽤나 긁힌 달룡이. 뭐 그래도 결혼도 했으니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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