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8/10 드디어 리마 도착

밤새 달린 버스는 오전 11시쯤 되더니 창 밖으로 리마 시내가 보였다. 우리 베개도 접어서 가방에 넣고 곧 내릴 채비를 하고 있는데 쿵 소리가 나더니 버스가 멈춰 섰다. 리마의 김여사님과 경미한 접촉 사고가 난 것이었다. 다행히 경찰와서 대충 뭘 쓰는가 싶더니 버스를 보내줘 크게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버스 사무소까지 올 수 있었다. (리마에도 종합 버스 터미널이 없는지 버스는 Cruz del Sur 사무실에서 타고 내렸다.)

우리에게는 남미에서 마지막 종착지가 되는 리마에서는 앞으로 4일을 있을 예정으로 리마에서 안전하다 Miraflores라는 동네의 한 아파트를 예약해뒀다. 리마는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지 숙소도 다양했고 35불 정도에도 안전한 동네라는 곳에 밥도 해 먹을수 있는 아파트를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뻤다. 아파트에 며칠 있으며 편하게 해먹던 것도 칠레 산티아고가 마지막이었던지라 특히 상당히 기대가 컸다. 주인도 예약한 그날부터 친절하게 메일로 오는 방법등을 설명해 준 터라 믿음이 컸다.

하지만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에 첫발을 내디는 순간 우리의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건물을 관리하는 할아버지에게 예약사실을 알렸더니 할아버지는 영어는 못 했지만 바로 알아듣고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방은 바로 현관 옆에 붙어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원래 아파트로 사용하는 곳이 아닌, 스토리지등 타 용도로 사용할만한 곳을 조금 꾸며 아파트랍시고 해 놓은 곳이었다. 바닥에는 걸레같은 얇은 카페트 하나 깔려 있고 옷장이라고 만들어 놓은 곳은 벽돌쌓아 페인트 칠하고 문대신 헝겊으로 덮어 놓은 수준이었다. 부엌 역시 만지기도 더러워 보이는 같은 헝겊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화장실의 온수 시스템은 포사다스에서 한번 본적있는 샤워 꼭지에 순간 온수기가 달려 있어 뜨거운물이 지지리도 안나오는 타입이었다. 게다가 창문 밖으로는 바로 아파트의 주차장이었으니 자동차 들어올때마다 소음은 기본이요, 창문 커텐도 열고 있을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쓰레기 같은 곳을 꽤나 고급 서비스 레지던스라고 써 붙여 놓은 주인과, 그대로 올려놓은 예약사이트에도 화가 났다. 하지만 이미 3박이나 예약을 하고 온 이상, 암스텔담과 같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좋게 끝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하니 주인은 멀리 있어 연락이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의 말도 안되는 스패니쉬로 할아버지한테 이곳은 너무 쓰레기다. 내일 체크아웃하고 하루치만 내겠다라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같았지만 그동안 당한것도 꽤 되는지라, 1박치를 지불하면서 영수증에 내일 나가는 것을 명시하게 한 후 주인한테도 이메일을 보내놨다. 다행히 주인한테 답장은 바로 와서 마음에 안들었다면 미안하다고 흔쾌히 나가라고 하는데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건 마치 낚아보고 그냥 낚이면 돈 버는 거고 아니면 마는 것도 아니고 뭐 암튼 그래도 보내주니 그게 어디인가. 우리는 어쨋건 내일부터 3일간 있을 곳을 찾으러 나섰다.

인터넷도 안되고 급하게 이사해야 할 곳을 찾게 된 우리는 론리플래넷에서 평이 좋게 나온 한 호스텔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다. Flying Dog 호스텔은 아파트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는데 큰 길에서 많이 들어가지도 않고 꽤 좋은 위치에 있었다. 호스텔은 장사가 잘되어 남은 방은 화장실이 딸린 객실밖에 없었는데 이 마저도 딱 한개 남았다고 했다. 가격은 깍아줘서 80솔로 거의 30불이었다. 위치도 좋고 시설도 많이 나쁘지는 않아 예약을 하고 내일 오기로 했다.

하지만 숙소 가격이 꽤 싸다고 생각했던 리마에서 호스텔에서 1박당 30불씩 내고 있기는 조금 아쉬워서 오는 길에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역시나 모두 가격이 비쌌다. 그러던 중 우리 아파트 들어가는 골목 반대편에 한 호텔이 보여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들어갔다. 처음 부른 가격도 50불 정도로 아주 비싸진 않아 방을 보여달라고 해서 방을 봤더니 자연채광이 없어 뭔가 동굴스럽기는 했지만 왠지 괜찮았다. 그래서 깍고 깍았더니 쿨하게 40불로 해줘 총 120불에 3박을 예약할 수 있었다. 그길로 Flying Dog 호스텔로 돌아가 미안하지만 방금 예약한것을 취소해도 되겠냐고 했더니 여기도 쿨하게 상관없다고 문제없이 취소해줬다.

내일부터 숙소도 마음에 드는 곳으로 구했겠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어쨋건 오늘만 부엌이 있으니 오랜만에 밥이나 맛있게 해 먹자며 슈퍼에서 스테이크랑 이것저것 사서 아파트로 돌아왔다. 냉장고에 음식들을 넣어뒀다 저녁 시간이 되어 밥을 해 먹으려고 준비를 하는데 가스불이 안 들어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스가 떨어졌는지 알고 우리 바로 옆에 있는 관리인 할아버지를 불렀더니, 그거 원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엥? 뭔말인가 우리가 잘못 들었나 하고 의아해 하고 있으니 가서 보여주는데 가스렌지는 있었지만 뒤에 가스호스는 전혀 없는 완전 전시용이었다. 정말 대단한 곳이었다. 이젠 싸울 힘도 없고 싸워봤자 지금 나갈것도 아니고, 결국 피같은 음식재료 다 버리고 혼자 슈퍼까지 걸어가 로티세리 치킨 한마리 사갖고 와서 저녁으로 먹었다.


버스 사무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미라플로레스로


아파트 간다고 꿈에 부풀었었는데.. 왼쪽 커텐이 옷장, 중간 커텐이 부엌..

화장실 윗쪽은 뚫려 있어 소음은 기본

최고는 역시 부엌. 뜨거운물은 바라지도 않는다, 가스렌지는 되야 하는거 아닌가

리마에 왔더니 길거리에 딤섬 전문점도 있었다

커텐을 열면 바로 주차장이다. 여행을 통틀어 기억에 남는 최악의 숙소 중 하나.